문견록자료 머리말

문견록자료 머리말

김석호 2017. 10. 20. 17:54

 

 

 

 

 

 

漢詩로 쓴

光復後 半世紀時代相

 

- 明齋知人들이 쓴 漢詩集 -

 

 

 

 

 

 

 

 

 

著者 明齋 金 壽 潤

共同飜譯 金 石 鎬

李 完 洙

 

 

 

漢詩를 쓴 年代 : 1940年代 初 ~ 1980年代 初

編輯 發行日 : 2015831

 

 

 

 

 

 

 

 

 

 

 

 

 

 

 

 

 

 

 

 

 

 

 

 

 

 

 

 

 

 

 

 

머리말

이 책에 있는 한시(漢詩)와 한문문장(漢文文章)은 저의 선친께서 만드신

문견록(聞見錄)에서 일부를 발췌(拔萃)한 것입니다.

선친의 성함은 김수윤(金壽潤)이며 호는 명재(明齋)입니다.

선친께서는 8·15광복(光復) 전후(前後)부터 1980년대 초까지 약 50년간 모두

10권의 문견록을 쓰셨습니다. 경남 하동군 진교면 성평마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문견록을 쓰기 시작하셨고, 1975년에 서울에 오셔서 1986년에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시기까지 주로 남산의 시립남산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도

다니시고 또 한시를 좋아하는 노인 친구분들과 같이 남산공원에서 한시를 지어 서로 주고받으면서 문견록을 쓰셨습니다.

내용은 남들로부터 들은 이야기, 책이나 신문 등에서 본 글이나 한시, 본인이

지으신 한시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한시 등입니다.

아버님께서 쓰신 문견록 서문(序文-이 책 351페이지에 있음)듣고 보는

대로 기록했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내용들이 섞여 있어서 다음에 종류별로

정리하여 책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친의 말씀에 따라 저가

문견록의 내용을 분류하고 정리하여 책을 만들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문견록은 분량이 방대하여 일부만 발췌하여 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자료를 발췌할 때 이미 세상에 알려진 것(다른 책이나 신문 잡지 등에서

보고 기록한 내용들)은 제외 했습니다.

선친께서 직접 쓰신 한시와 문장, 그리고 주관하셨던 행사에서 받은 한시와,

친한 벗들로부터 받은 편지 한시등 약600여건을 추려서 그 내용을 번역하고

해석하여 편집한 것이 이 책입니다.

대부분이 한시이며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후손이나 일반인들이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우므로 부족하나마 저가 번역을 하고 그 뜻을 해석하기로 마음먹고 오랫동안 번역을 했습니다.

번역과 해석을 하고 보니까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첫째, 이 책속에 있는 한시와 문장들이 대부분 광복 후 반세기 동안에

써진 것이며 그 시대의 시대상(時代相)이 보였습니다.

국경일 기념일 민속일등의 노래에서부터 새마을운동과 이제는 역사 속에서만 기억될 뿐인 5.16군사혁명이나 유신(維新)세계 5공화국등 많은 일들에 대한 그

시대의 모습이 되돌아 보였습니다. 또한, 광복 직후부터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를 때 까지는 옛 풍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회갑을 하고 회갑 축시를 썼으며,

충효사상이 면면히 흐르면서 충() () ()에 대한 한시들이 많았습니다.

둘째, 농민의 농심(農心)이 곳곳에 배어났습니다.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를 지었습니다.

고서(古書)에서 본 기우제문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비가 때맞춰 와서 기쁜 마음으로 한시를 지었습니다.

풍년이 들어 추수를 감사했으며 농사지으면서 계절의 순환을 노래했습니다.

 

세 번째는, 서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1970~1980년의 서울의 모습, 정부미라는 말이 나오는 김포쌀상회, 남산

공원의 풍경, 지하철, 그리고 한 때 살았던 도봉구와 강서구 소식 등입니다.

넷째로, 벗들의 우정이 오고 갔습니다.

주로 남산공원에서 다양한 주제를 놓고 한시를 좋아하는 벗들과 함께 한시를

써서 서로 주고받았으며 명재 본인이 병고(病苦)로 어려웠을 때 여러 벗들이

위로(慰勞)의 시를 써 주었습니다.

번역해야할 漢詩의 분량이 방대하여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저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저하고 같이 번역에 참여해준 이완수 친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완수 친구는 古典의 전거(典據)를 찾아서 의미를 해석하고, 漢詩의 비유나 은유적인 표현에 대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번역문을 詩的인 우리말로 다듬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한시는 이해가 잘 안되어 여러 경로로 도움을 요청하여 자문을 받았습니다. 강원대 김풍기교수님, 경상대 허권수교수님, 동국대 김갑기교수님,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자문에 답하여 주신 노성두선생님과 네이버 지식인에서 답변해

주신분등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20158월 아들 석 호 씀

 

 

 

 

 

 

 

 

 

명재(明齋) 金壽潤선생 일대기

애친 경장 융사 친우의 도(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

선생은 일제가 조선 병탄을 진행하던 암울한 시기인 1909년 경남 하동군

진교면 관곡리에서 김해김씨 사군파의 후손 김동현(金東炫)33녀의 장남

으로 태어났다.

수윤(壽潤)으로 이름을 지어 호적에 올렸는데 항렬이 재()이므로 족보에는

재희(在禧)로 썼다. 물려받은 농지가 적어서 소작으로 생계를 꾸려 가야하는

집안이다 보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한학을 했기 때문에 어려서 할아버지의 물과 담배심부름,

화로불 갈기, 청소등을 하면서 천자문을 동네 친구와 같이 배울 수가 있었다.

이때 천자문을 배울 뿐만 아니고, 부모님을 섬기며 웃어른과 스승을 공경하고 친구를 사귀는(愛親敬長隆師親友)법 등 유교적인 인격형성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같이 배우던 친구가 보통학교로 가게 되자 할아버지에게 보통학교에

보내 달라고 졸랐으나, 할아버지는 왜인(倭人)학교에 가면 삭발하고, 검은

옷을 입고, 왜말(일본어)을 배우기 때문에 불가하다고 하시고 한문(漢文)

공부가 최호(最好)하시면서 서당에 가서 한학을 배우라고 하였다.

그래서 걸어서 10리 정도 되는 고일원이라는 곳에 30여명이 다니는 서당이

있어서 그리로 가서 한 해 봄을 배웠다.

그 때가 열네 살이었다.

서당 가는 길에 꾀꼬리재(산 고개)를 넘어 다녀야 했고 점심도시락으로

주먹밥(보리밥에 나물을 넣어 만든 주먹밥)을 싸서 다녔다

당시 서당 훈장 선생님은 글을 읽고 쓰는 것 외에 글짓기(작문)를 강조하여,

매일 숙제를 내어 주었다. 숙제를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고개를 넘곤 했으며,

처음은 어렵고 힘들었으나, 한문으로 글을 짓는 실력이 늘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해 농사를 다 짓고 나서(東作西成) 겨울에는 가마니를 짰다.

가마니를 짜서 파는 것이 농한기의 부업이었다.

다음해에 문중의 큰 어른이신 삼종조부(相熙 月南)께서 시월시제 때

오셔서 부친(명재의)이 아이(명재를 지칭)를 반드시 나의서당에 보내라고 하셔서 동지섣달 두 달 동안 삼종조부의 서당에서 수업하였다. 양보면 세곡에 정백경씨가 설립한 서당에 삼종조부께서 훈장으로 계셨기 때문이다.

생도 중에는 정원세, 정봉조, 정경모씨등이 있었는데 이 세 사람이 실력이

뛰어났다. 이때 서당에서 동문수학한 인연으로 친구로 지내게 되었고 한문

한시 등의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 뒤에도 낮에는 농사지으면서 일하고 밤에 공부하면서 근면하고 검소하게

살자고 하는 경독근검(耕讀勤儉)을 생활신조로 삼게 되었다.

耕讀 勤儉

18세에 생계에 도움을 주고자 양보면 가락동에 소재한 한약방(김기채씨가

운영)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의학입문(동의보감의 기초분야요약)부터 시작

하여 한의학 서적과 약성가(藥性歌)를 외우기 시작했다.

약성가는 인삼감미 대보원기하며 지갈생진 조영양형하고...”와 같이 한약재의 성분과 약효를 노래 가사 같이 풀어 쓴 것이다.

그 후에도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한약방(이병교씨가 운영)에 들어가 약방일과 농사일을 하던 중에 19세에 이웃 양보면 우복리의 용궁김씨(又連)와 혼인을

하게 되었고, 24녀를 두었다.

그 당시 장인 되시는 김환철(金煥澈)씨는 하동향교에 자주 다니던 이 지역의

유명한 한학자였다. 이를 계기로 한문과 한시를 좀 더 많이 배우게 되었다.

화동정음통석운고(華東正音通釋韻考)라는 음운학책을 구해 한자의 운율을

공부하는 한편 한시를 지어 장인의 지도를 받아 가면서 詩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명재선생의 詩作에 영향을 준 사람은 자형 이익홍씨와 한약방을 운영하던 박달리의 이병교씨, 진교면 진교에서 한약방을 한 권영집씨, 인근 마을

반석의 문중 김홍태씨 월운의 안종태씨 문철수씨 갑정의 정석주씨 같은 마을 성평의 정흥주씨 김선호씨 등이었다.

25세에는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 갈 기회가 있어서 아이지현의 고베시와

오까자끼시에 가서 노동일을 하면서 선진 문물도 체험하는 기회를 가지기도

하였으나, 고향의 부모님생각과 자녀걱정에 10개월 만에 돌아오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한약방 면허시험에 합격하여(경남지사발행허가증) 농사와 약방 일을 겸업하면서 간간이 한시를 짓기도 하였다. 집안 살림도 조금씩 늘어갔으며, 생활의 여유도 찾게 된다.

광복과 6.25사변을 거치면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던 1956

40대 후반이 되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우선 집안 선조의 묘 6기를 보수하고 상석과 망부석을 세우고 집안 가승

(家乘)도 빠진 부분을 넣고 수정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6부를 일일이 필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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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집안에 배포하였다.

또 집안의 9촌 아저씨인 의현(義炫)씨의 행장록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방계 증조할머니 진양류씨의 효열비(孝烈碑) 건립을 추진하여, 본인도 축하 시를 짓고 축시 28편을 접수하였으며 비석, 비각을 건립하여 김해김씨의

월운 소종(小宗) 문중이 주위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게 되었다.

 

다시 學生으로 돌아가다.

1962(54)년부터 그간 주변에서 듣고 본 것들을 기록하는 문견록(聞見錄)

쓰기 시작하였다. 과거에 지었던 한시, 기타 메모해 두었던 것들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친사람의 말이라도 성인은 가려서 들을 말이 있다는 말을 참고

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에서 유용한 것은 기록을 했다.

책을 보면서 내용이 좋은 것은 기록했다. 용기를 가지고 한시를 짓기도 했다.

그래서 작은 수첩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기록하고 집에 와서는 문견록에 옮겨

적었다.

이때부터는 농사와 약방의 겸업이 어려워 약방을 그만 두게 된다.

1970년 하동의 송림음사(松林吟社)라는 한시 모임에 정식회원으로 가입하였고 본격 한시 짓기를 시작하여, 2년 후(1972) 송림음사 한시 대회에서 입상을 하게 된다(山淸秀麗古城東 携手相逢此席同.....244페이지에 있음)

19714월 부부간에 서울여행을 할 때에 인천 자유공원도 구경하였고 집에

돌아 올 때에는 막내사위가 비행기를 태워 주어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사천공항까지 왔다.

이때에 승비행기(乘飛行機)라는 제목으로 한시를 3수 지었다.

1973년에는 큰아들(태호) 가족이 살도록 부산 동래구 동상동에 작은 주택을

매입하였다.

19751월에는 작은아들(석호)이 삼성그룹 신세계에 입사하게 되어 시골

고향을 떠나 서울로 거처를 옮겨서 작은아들과 같이 서울에서 살게 된다.

그 후 10여년을 서울에서 생활했지만 마음은 항상 서울을 객지라고 생각하며

객수(客愁) 사고향(思故鄕) 객야(客夜) 객중탄병(客中歎病)등의 제목으로 한시를 다수 지었다.

그 해 4월에 시골 고향에 다녀오면서 과로 겸 감기로 귀에 출혈이 생겨서

부산대학병원에서 오른쪽 귀를 수술하였다.

그 때부터 귀가 잘 안 들리게 되어서 보청기를 사용하였다.

서울에 살면서부터는 남산의 국립중앙도서관과 시립도서관에 자주 다녔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고서와 조선시대의 문집등을 보면서 흥미 있는 것을

문견록에 많이 기록했다. 특히 한시를 많이 읽고 기록함으로써 본인의 한시

시작(詩作)에 많은 참고를 하였다.

 

197510월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운영하는 長壽大學(현재의 노인대학)에 부인과 같이 16기로 입학을 하게 된다. 입학 기념으로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했는데 육사생도 훈련하는 것과 육사박물관을 견학하고 사관학교 경내도 구경하였다.

소시적에 가정형편으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도서관에 자주 가서 책을 읽고 시를 쓰기도 하던 중에, 남산공원에 나와 한시를 하는

분들과 어울려 시를 주고받곤 하였다.

남산공원에서 한시를 주고받으며 어울린 분들이 송암 신원삼, 성암 복창규,

지산 문형주, 학송 국영기, 벽산 임헌묵씨등이다.

이분들로부터 받은 한시가 약 200여 수가 된다.

그간 기록한 문견록이 10권에 그 내용이 3250여건인데 그중에는 칠언율시

(七言律詩)인 한시가 대부분으로 가장 많고 시사문제, 교양, 단문등이 있다.

지금 와서 후대의 시야에서 보면 유교적인 가치에 너무 치우쳐있고 다소 고루

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명재선생은 암울한 시기에 아주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없었던 상황을 스스로 극복해가면서, 낮에는 농사일과

한약방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을 하면서, 또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사는 경독근검(耕讀勤儉)을 일관되게 실천하셨으며 198678세로

작고하셨다.

농부로서 한의원으로 또 한학자로 근면하고 검소하게 살아오셨고 많은 한시와 기록들을 남기신 것을 높이 평가하며 명재선생을 기리면서 감히 선생의 행적을 정리해 보았다.

20158월 일

姜 聲 得 (전 명지대 유통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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飜譯後 所感

이 책에 수록된 漢詩의 대부분은 19458·15광복 직후부터 1980년대까지 써진 작품들입니다. 時代야 말로 우리나라 역사상 政治 社會 文化등 다방면에 걸쳐 大 混亂變革으로 인한 激浪의 시기였으며, 傳統的 儒敎 중심의

價値觀은 점점 시들고 그 자리에 西歐文明이 자리 잡으면서 일상의 語文生活에도 漢字漢文을사용하는 것이 뒷전으로 밀려난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時代的 상황에서 직업적 전문 지식인이 아닌 世間의 일반 한학자들

수십명이 그 시대를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써서 남긴 漢詩 作品,

오늘날의 우리가 읽음으로서 우리 자신의 뿌리와 참다운 精神的 價値觀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한시는 하나의 詩句5또는 7의 글자 수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詩句 中에 글자를 축약시키기도 하고, 시의 운을 맞추기(押韻)위해서 글자를 도치시키는 경우도 있어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울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詩句의 글자 하나하나마다 漢韓辭典에 나와 있는 여러 의미를 대조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漢詩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깊이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밑천 삼아 번역 과정에서 인상 깊게 느꼈던 몇몇 작품을 중심으로 번역후의 所感을 피력(披瀝)하고자 합니다.

 

明齋 作 百樂詩(p321)詩句의 끝에 즐거울 樂字으로 한 100개의

詩句驅使했는데 작가분의 노력과 시인의 소양이 매우 돋보이는 역작이라고 생각합니다.

百樂詩는 한구 한구마다 다양한 소재를 담고 있으며 옛날의 역사적 사실과

지금 생활의 일상사 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마지막 12구는 정월부터 섣달까지

그달 그달의 民俗圖가 그려져 있어 더욱 이채로웠습니다.

 

晩樵 作 聽溪軒(p202)에는 외딴 곳 정자에 고요히 앉아 주위를 돌아보고

閑花落子生踈砌 고요히 꽃씨 떨어져 나뭇잎 우거진 섬돌사이에도 자라고

幽竹穉孫穿綠苔 어둑한 대밭 속엔 어린죽순이 푸른 이끼 뚫고나오네.

라고 표현 했습니다.

조그만 꽃씨가 섬돌 틈 사이에 떨어졌다가 봄이 되어 싹이 트고 자라는 것과 그늘 짙어 어두컴컴한 대밭 속에서 솟아나는 죽순(竹筍)까지도 놓치지 않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시로 쓴 시인의 섬세한 情緖에 따뜻한 온기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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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적인 표현이 아름다운 것도 있습니다.

明齋 作 乘飛行機又(p67)

俯看孤雲衆嵥杳 내려다보니 외로운 구름들은 한없이 높이 떠 아득하고

北仙瞬息爲南仙 북쪽 신선이 어느덧 순식간에 남쪽 신선이 되었네.

芝山 作 七夕(p47)

別路票誠仙錦贈 이별하는 길목에 정표 삼는 직녀비단

逢時誠意寶瓊投 만날 때 베푼 성의 귀한 옥돌 던졌네(유성우 낙하)

 

 

 

東洋哲學根幹 儒 佛 仙의 사상이 하나의 작품 속에 함께 녹아 있는 도 있습니다.

李炳敎 作 乙酉回甲韻(p300)을 보게 되면 南極仙翁() 金粟金粟如來() 諸趨趨庭(-논어)이 그것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무심코 읽고 넘길 수도 있지만 작가로서는 儒 佛 仙 3를 모두 언급하려면 그 방면의 깊은 지식과 詩作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誠菴 作 慰客地病苦詩(p173) 仙家思想을 끌어다가 天命을 논하고 환자를

위로하는 은유적인 표현의 수준 높은 漢詩라고 하겠습니다.

碧桃新結三神岳 벽도는 삼신산에 새 열매를 맺고

紫艸遺根四皓衢 자초는 사호의 거리에 뿌리를 남기리오.

天命於人何謾漏 천명을 사람에게 어찌 함부로 누설하랴.

安期生也永郞殊 안기생은 영랑과는 달랐다오.

새로 맺힌 벽도와 아직 남아있는 자초 뿌리를 가지고 병이 나을 것이라고

위로하며 안기생과 영랑으로 천명을 논하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誠菴詩語 하나에 깊은 뜻이 담긴 것이 많고 해박한 古典의 지식과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표현기법으로 인하여 詩 全篇에 담겨있는 심오한 의미를 번역자가 어느 정도로 이해했는지 우려되기도 합니다.

 

敬天思想이 반영된 들도 있습니다.

人間의 숙명을 洞察하고 意志의 한계를 느꼈을 때 누구나 絶對者的 存在()에 의지하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심리일 것입니다.

明齋松菴이 각각 지은 人生在天 두편(p168)

松菴 作 自顧一生歎無成(p186) 自嘲一生其二(p186)의 두 편의 시는 하늘을 공경하고 순응해야 함을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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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者 未詳思鄕詩(p155)抒情詩로서 단연 돋보였습니다.

夢驚寒杵三更月 삼경 밝은 달, 놀라 꿈 깬 한밤중, 멀리 다듬이 소리

鴈極歸鴻萬里天 만리 창천, 기러기 고향 찾는 행렬 잇네.

憶弟思家秋已晩 깊어가는 이 가을 옛집 그리운 시름겨워

烟波江上獨悽然 안개 자욱한 강 녘, 홀로 처연하구나.

故鄕을 떠나 異域의 쓸쓸한 늦가을 밤 풍경과 떨어져 사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明齋 作 客裡思鄕省墓時(p153) 客夜思鄕吟(p153)에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客裡思鄕省墓時

父祖靑山雲下遠 푸른 산 조상의 묘역은 구름아래 멀고

族親會席酒中詵 성묘하러 친척 간에 많이 모여 술자리를 하겠구나.

客夜思鄕吟

庭園花木眼常現 정원의 花木이 눈에 선하고

野畒菜麻夢自成 남새밭 채소도 꿈에 보인다.

내가 살던 고향이라서 눈에 선하고 꿈에 보이는 것이겠지만, 조상을 모신 고향이기에 인생의 뿌리인 조상과 고향을 늘 생각하는 모습이 요즈음의 세태와 사뭇 다른 그 시대의 정신이라고 여겨집니다.

 

 

 

偶吟(p71) 憂世韻(p72) 雜詩(p129)3편의 松菴 작품 구시대의 질서와

가치관이 점점 무너져가는 시대인 光復後 半世紀를 살았던 분들이 느꼈을 정신적 혼란과 世俗에 대하여 개탄하고 있습니다.

특히 雜詩는 경박스런 세속에 대해 눈살 찌푸리는 老詩人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듯 직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책에는 忠 孝에 대한 詩篇이 많습니다.

民主化되고 核家族化된 오늘의 視覺에서 보면 시대에 좀 뒤떨어진 말처럼 들리겠지만 忠 孝의 그 근본 趣旨萬古不變眞理가 아니겠슴니까 .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효제는 인을 이루는 근본이리라”-論語學而篇에 나오는 말입니다.

儒敎가 추구하는 최고의 덕목이라합니다. 이 책에 있는 忠孝主題로한 를 읽으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볼 때인 것 같습니다.

20158李 完 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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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번역상의 특수성

 

친구 김석호가 말하길 우리 선친의 유고인 문견록(聞見錄) 10권이 있는데

한 번 봐보고 같이 번역해보자고 제의 하였을 때 우선 그 엄청난 분량에

놀랐는데다 한시(漢詩)에 대해 문외한(門外漢)인 저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처음에는 고사(苦辭)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몇 편의 의미를 알고 나니 우리 직전(直前)세대를 살고 간 그 분들이 바라 본 사회상에 흥미를 느낀 데에다, 더구나 각 작가분들의 깊은 지식체계에 감명 받아 한 번 배워보자는 입장에서 이 번역작업에 끝까지 친구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난해한 시구(詩句)를 해석하기 위해 그간 2년여에 걸쳐 도서관에서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단국대학교 발행)을 뒤적였고 저가 소장하고 있는

대한한사전(大漢韓辭典-장원상 저)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초보운전자와 같은 조심성을 가지고 엉뚱한 오역(誤譯)을 피하기 위해 친구와 같이 한국고전번역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인터넷등의 매체를 통해 대학교수진과

네이버 지식인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한 바도 적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하였으나 일부 오류도 있으리라 사료되며 독자제현께서 그 오류를 지적해 주시면 앞으로 공부에 많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독자층을 고려하여 약간의 무리를 하면서 까지 읽는 이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의역(意譯)한 부분도 있음을 밝혀둡니다.

 

초보자로서 방대한 분량의 한시 및 문장을 번역하다 보니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번역과정에서 느낀 어려움을 대략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각 사례의 용어들은 이미 편집자인 친구가 본문 밑에 상세하게 주석을 달아

놓았으므로 여기서 저는 중복 설명을 피하고 지면을 아낀다는 의미에서 해당

용어가 실려 있는 페이지만 표시하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1.원 자구(原 字句)에서 일부글자를 생략하고 사용한 경우

) 강구(康衢)-86p 반포(反哺)-117p 어로(魚魯)-162p 금거(襟裾)-233p

부생공자(浮生空自)-227p 삼종(三從)-277p 아호(莪蒿)-291p

남산(南山)-292p 래아무(來兒舞)-293p 상호(桑弧)-294p

구로(劬勞)-295p 연빙(淵氷)-296p 금속(金粟)-300p 교송(喬松)-305p 거저(居諸)-3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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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중국의 역사적 사실 및 우리 풍습의 일화를 알아야 해석이 가능한 경우

) 조우도산(朝禹塗山)-34p 멱수(汨水)-43p 걸교(乞巧)-47p

허유(許由)-72p 성탕(成湯)-76p 수유(茱萸)-95p 당우(唐虞)-147p

반고(般古)-197p 괴시(槐市)-228p 기수관동회(沂水冠童會)-232p

유영(柳營)-255p 빙리순설(氷鯉筍雪)-279p 래아무(萊莪舞)-293p

사봉순룡(謝鳳荀龍)-301p 현호(懸弧)-307p 승로감미(承露甘味)-311p

우예(虞芮)-350p 이수(二竪)-356p

 

3.시경(詩經)의 일부 시구(詩句)를 차용하여 작자의 뜻을 축약하여 표현한 경우

) 고학(臯鶴)-275p 아호(莪蒿)-291p 남산(南山)-292p 구로(劬勞)-295p

연빙(淵氷)-296p 훈지(壎篪)-296p 육아편(蓼莪篇)-304p

4.논어(論語)의 뜻을 일부 시구(詩句)에 차용한 경우

) 사유(四維)-60p 외서(外書)-68p 삼익(三益)-178p 손우(損友)-179p

삼종(三從)-277p 추정(趨庭)-298p 택린(擇隣)-299p 인수(仁壽)-304p

 

5.불교(佛敎) 및 노.(.)사상등의 고전(古典)과 관련된 인물 용어의 활용

) 대천세계(大千世界)-53p 화신(化身)-53p 적선(謫仙)-115p

적송자(赤松子)-124p 벽도(碧桃)-173p 삼신악(三神岳)-173p

영랑(永郞)-173p 안기생(安期生)-173p 방사.동천(方士.洞天)-188p

금속여래(金粟如來)-300p 화봉삼축(華封三祝)-309p

 

6.시구(詩句)에 나오는 고유명사(: 인물의 )를 고유명사인줄을 잘 몰라서

해석에 혼선을 야기할 수 있는 사례

) 청음(淸陰)-94p 우군(右軍)-115p 석숭(石崇)-136p 일소(逸少)-175p

청련(靑蓮)-175p 추성(秋成)-178p 백락(伯樂)-237p 장절(壯節)-255p 북해(北海)-280p

 

7.현대문(現代文)에서 잘 쓰이지 않는 고어(古語)의 사용

) 소춘(小春)-33p 부상(扶桑)-34p 천중가절(天中佳節)-42p 돈장(敦牂)-42p 계불(禊祓),불계(祓禊)-45p 병망(寎望)-60p 반룡부봉(攀龍附鳳)-106p

산량(山梁)-122p 상사(上巳)-123p 수계(修禊)-123p 미록(麋鹿)-130p 화왕(火旺)-130p 제사증상(祭祀蒸嘗)-143p 청금(靑襟)-235p

()-315p 삼달존(三達尊)-250p 지란(芝蘭)-296p 보수(寶樹)-3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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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고문(古文)의 관습어로써 자리매김한 것 같은 용어를 사용한 경우

) 불녕(不佞)-270p 해옥(海屋)-293p 훤춘(萱椿)-293p 상호(桑弧)-294p 불선(不宣)-341p 취백(就白)-344p 구십(九十),백오(百五)-348p

길견(吉蠲)-361p

 

9.음양오행(陰陽五行) 또는 주역(周易)의 상징을 한시(漢詩)에 차용한 경우

) 금기(金氣)-46p 백제(白帝)-46p 양의(兩儀)-68p ()-96p

동작서성(東作西成)-85p 진방(辰方)-158p ()-363p

 

10.비유적(比喩的)인 표현의 경우

) 석대부(石大夫) 송사자(松使者) 모공자(毛公子) 저선생(楮先生)-180p

금의공자(金衣公子)-243p 두사(斗司)-285p

 

11.한문(漢文) 한 글자 중 여러 뜻이 있을 때 일반적인 뜻이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뜻으로 풀어야 할 경우----이 경우의 사례는 매우 빈번함

) (주 교언영색(巧言令色)할 주)-89p (교 옷깃)-103p

(책 별 이름)-125p 百朋(백붕)-352p

 

12.를 지을 당시 작자의 주변정황을 고려하여 해석해야하는 경우

情況) 을유회갑운의 당사자의 회갑일이 1945. 9. 27(음력)로서 일제 강점기

에서 해방을 맞이한 직후임

天回故國三千里 人在東河六一春---301p

故國旣還宴晬辰 大東人事命維新---293p

情況) 을유회갑운의 당사자의 가 국포(菊圃-국화밭)이므로 꽃밭이

국화꽃속에 숨어산다는 은유적 표현

何幸晬辰遇花中隱逸與人新---296p

 

情況) 和從軍吟松菴 申元三씨가 지은 題孫兒入隊에 대한 화답시이기

때문에 송암의 성씨가 신씨이므로 壯節을 고유명사로 알 수 있었음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시호가 壯節公이고 송암은 장절공의 후손)

壯節後孫武閥深 丈夫銳氣正駸駸---255p

20158李 完 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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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解說

저의 선친께서 쓰신 문견록 10권에서 본인 및 가까운 지인들이 지은 한시와 본인의 철학이 담긴 단문 몇 편을 골라서 총 613건을 번역하였습니다.

1. 자료를 발췌할 때 다른 책이나 신문 잡지 등에서 보고 기록한 것은 제외

했으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는 이 책에 넣었습니다.

-새마을건설, 5·16군사혁명, 완월세계, 충무공조영무등의 몇 편의

다른 책에 이미 발표된 것인데 그 에 따라서 를 지었기 때문에 원래 의 도 함께 넣었습니다.

-漢詩 晋州矗石樓原韻落照, 단문 거가락(居家樂), 독서락(讀書樂)

평소에 즐겨 외우신 것입니다.

-楊公子俯伏階下頃刻奏千言祈雨祭文 그리고 佛手硏齋등의 몇 가지는

관심사항을 보고 기록한 문견록의 사례로서 이 책에도 실었습니다.

2. 613건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作家別 作品 件數

明齋 本人 279

南山公園漢詩 親舊 5208

明齋 故鄕親戚 親舊等 4572

의 다른 사람 5454

장르별 分類

七言律詩 477

七言絶句 49

七言二行詩句 54

便紙文章 19

기타 14

 

3. 五行 干支 早見表

이 책에는 陰陽五行과 관련된 것이 많으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붙입니다.

五行

十干

十二支

方位

季節

色相

()

.

.

()

()

.

.

여름

()

()

.

. . .

中央

환절기

()

()

.

.

西

가을

()

()

.

.

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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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目次의 페이지 옆에 있는 영어대문자는 같은 운()의 시라는 뜻입니다.

 

5. 作家를 기록한 사례

1) 대부분의 경우 姓名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2) 274p-311p 작가표시

石隱 宗人(또는 ) 烘泰 辰橋面 磻石

() 저자 明齋宗人 이름 하동군의 마을이름

(김해김씨)

蘭史 晉陽 鄭源黙 良甫面 禮洞

호 본관 성명 하동군의 마을이름

 

6. 西紀 年度에 해당하는 五行干支(이 책에 있는 주요한 몇 개)

1945 1962 1969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 1981 1982 1983

을유 임인 기유 을묘 병진 정사 무오 기미 경신 신유 임술 계해

 

20158월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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